- A병원·B협회 답변서로 드러난 장애인 고용의 허점
- 지원금·세제혜택보다 장애인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먼저
- 천안시·복지부에 장애인 고용사업 관리·감독 강화 촉구
장애인의 자립과사회참여를 돕기위해 마련된 장애인고용제도가 현장에서 당초 취지와 다르게 운영 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장애인 근로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천안시니어타임즈는 최근 천안소재 A병원과 장애인 고용 관련 기관인 B협회사이에서추진된 장애인고용사업과 관련해, 14명의 장애인 근로자가 채용된 지 한 달여 만에 일터를 떠나게 된 과정을 취재했다.
본지는 양기관에 동일한 취지의 공개 질의를 보내 ▲채용 과정 ▲장애인표준사업장 추진 배경 ▲지원금 및 세제혜택 ▲고용 종료 과정 ▲근로자 보호 대책 등에 대해 질의했으며, 양측으로부터 공식 답변을 받았다.
취재결과 양측의 설명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한 가지 사실은 공통적으로 확인됐다.
14명의 장애인이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입사한 지 한 달여 만에 모두 일터를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 장애인 14명 채용…당초부터 ‘장애인표준사업장’ 추진
B협회는 A병원과의 협약 목적에 대해 “A병원이 장애인표준사업장 인증을 받음으로써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회는 장애인근로자 모집과 채용지원을 비롯해 근무일 및 근무시간 편성, 근로계약 관련 지원, 근무상황 관리, 사업장과 근로자 간 소통 등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14명의 장애인 근로자는 관련 기관과 복지관 등의 소개를 통해 A병원에 채용됐다.
A병원 역시 채용 목적에 대해 원내 환경 미화와 함께 세금감면, 장애인 고용에 따른 대외적인 긍정적 인식등을 사업적·사회적 목적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양측의 답변을 종합하면 이번 고용은 단순한 인력채용을 넘어 장애인표준사업장추진이라는 제도적 틀속에서 이루어진 고용이었다.
문제는이과정에서 장애인근로자의 장기적인 고용지속 가능성이 충분히 검토됐는가라는점이다.
■ 문제는 ‘채용’보다 ‘지속 가능한 고용’이었다
14명의 근로자는 2026년 8월 초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A병원 측 답변에 따르면 근무 조건은 주 4일, 하루 4시간, 월 64시간이었으며 월 급여는 약 86만 원 수준이었다.
병원측은 2026년 8월부터 1년간의 계약을 설명하면서도, 세부 조건에는 2026년 12월 31일까지의 근무조건을 명시하고 이후에는 병원 상황에 따라 근무일수와 조건을 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근무는 한달 여만에 중단됐다.
B협회는 A병원이 장애인표준사업장 추진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사업장을 방문했으며, 즉시 고용을 종료하기보다 조율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B협회는 이후 사업장 측이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사직서 작성을 요청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B협회에 따르면 당시 12명은 이미 사직서를 작성했고 2명은 작성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이후 나머지 2명도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A병원 측은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병원측은 근로자들에게 향후 경영상·재정상의 사정으로 장애인 고용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을 뿐, 퇴사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근로자들이 향후 고용안정성과 장기적인 근무 가능성을 스스로 판단해 다른 근무처를 알아보기로 결정했으며, 각자의 의사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양측은 사직과정이 자발적이었는지 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설명을하고있다.
현재 본지가 확보한 양측의 서면 답변만으로 어느 한쪽의 주장을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취재에서 주목해야할 지점은 책임 공방자체가 아니다.
어떠한 과정이었든 결과적으로 14명의 장애인이 입사 한 달여 만에 일터를 떠나게 됐다는 사실이다
■ 지원금·세제혜택 놓고 양측 주장 엇갈려
이번 사건에서 또하나 주목할 부분은 장애인고용을 둘러싼 경제적 혜택에 대한 양측의 설명이다.
A병원은 장애인 고용 과정에서 B협회가 정부 지원금과 세제혜택을 실제보다 크게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B협회는 A병원이 장애인 고용을 통해 세금 절감 등 경제적 혜택을 얻는 것을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다만 중요한 사실도 확인됐다.
양측 모두 이번 사업과 관련해 장애인표준사업장인증이 완료되지 않았으며, 이에 따른 지원금이나 세제 혜택을 실제로 받은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 특정 기관이 장애인고용과 관련해 지원금이나 세제혜택을 부당하게 수령했다고 단정할근거는없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던지는 제도적 질문은 분명하다.
장애인 고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혜택에 대한 기대가 장애인의 안정적인 고용보다 앞서서는 안된다는것이다.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사업비용이나 제도적 혜택을 얻기위한 수단이 아니다.
한사람의 생계이자 사회적 역할이며, 자립을 향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 기관 간 입장 차이의 부담, 왜 장애인이 떠안아야 하나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문제는 사업주와 지원 기관사이에 사업방향이나 운영방식에 대한 이견이 발생했을때 그결과를 장애인근로자가 떠안게될 수있는구조다.
A병원과 B협회는 당초 장애인 고용과 장애인표준사업장 추진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운영과정에서 사업장측의 부담과 제도에대한 입장 차이가 발생했고, 결국 장애인표준사업장 추진은 중단됐다.
B협회는 근로자의 안정적인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병원 측과 조율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A병원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근로자들에게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양측 모두 장애인근로자들이 겪은 어려움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장애인근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과에 그치지 않는다.
다시 일할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 감독기관에 묻는다
이번 사건은 이미 14명의 장애인 근로자가 일터를 떠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책임 공방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점검하고 같은일이 반복되지않도록 제도를 보완하는일이다.
이에 천안시 장애인복지관련부서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관계기관에 다음과 같은 관리·감독 강화를 촉구한다.
첫째, 장애인 대규모 채용사업에 대한 사전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여러명의 장애인근로자를 동시에 채용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단순한 채용 규모뿐아니라
·사업주의 장기고용의사
·실제 제공할 업무
·임금과 근로시간
·사업장의 지속가능성
·업무배치 계획
·향후고용 유지계획 등을 사전에확인할필요가있다.
‘채용할 수 있는가’보다 ‘계속 고용할 수 있는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둘째, 지원금·장려금·세제혜택에 대한 안내와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장애인 고용을 알선하거나 지원하는 기관이 사업주에게 관련 제도를 안내할 때에는 지원요건과 실제 수혜가능여부를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한다.
예상 되는지원금이나세제혜택을 실제 받을수있는것 처럼 오해하게하거나, 조건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고용을 권유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표준안내와 확인절차를 마련할 필요가있다.
셋째, 장애인 고용을 ‘채용 숫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고용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몇명을 채용했느냐만이 아니라 얼마나 안정적으로 일할수있도록 했느냐이다.
14명을 채용한 뒤 한 달여 만에 모두 일터를 떠났다면 단순한 채용 실적만으로 사업의 성과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향후에는 채용 인원과 함께 3개월·6개월·1년 고용 유지율 등을 함께 평가하는 방식으로제도를보완할 필요가있다.
넷째, 사업주와 지원기관의 갈등이 장애인 근로자의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 근로자를 모집하고 사업장에 연결한 지원기관과 실제 사용자가 서로 다른경우, 두 기관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장애인 근로자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사업추진과정에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근로자에게 일방적으로 고용 종료를 통보하기 전에 관계기관에 사전통보하고 조정할수 있는 절차가필요하다.
다섯째, 대규모 사직이 발생할 경우 독립적인 확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장애인근로자가 사업주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을수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러명의 장애인근로자가 짧은 기간에 동시에 퇴사하는 경우에는 사업주의 ‘자발적 사직’이라는 설명만으로 종결하기보다, 관계기관이 실제 근로자의 의사에 따른 퇴사였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있다.
여섯째, 사업 중단 시 장애인 근로자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주와 지원기관의 협력사업이 중단되더라도 그부담이 장애인근로자에게만 돌아가서는 안된다.
사업중단이 결정될 경우
① 사전 통보 → ② 근로자 상담 → ③ 임금 등 권리 확인 → ④ 재취업 연계 → ⑤ 일정 기간 사후관리
로 이어지는‘장애인 고용 종료 보호 절차’를마련할필요가있다.
■ 14명의 장애인이 남긴 질문
이번 사건을 통해 장애인 근로자들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어쩌면 간단하다.
“우리는 왜 한 달 만에 일자리를 잃어야 했습니까?”
사업주와 지원기관은 각자의 입장에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 근로자에게 중요한 것은 기관간의 협약이나 사업추진과정의 이해 관계가 아니다.
매일 출근할수있는 일터, 그리고 내일도 계속 일할수있다는 믿음이다.
장애인고용정책이 진정으로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 참여를위한 정책이라면 단순히 고용 인원을 늘리는데서 그쳐서는 안된다.
한사람을 채용했다면 그사람이 안정적으로 일할수있도록 책임지는 시스템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장애인고용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지원금보다 사람이 먼저이고, 세제혜택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먼저이며, 기관의 실적보다 장애인의 자립이 먼저여야 한다.
이번14명의 사례가 장애인 고용정책을 한 단계 더 촘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본지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A병원과 B협회에 동일한 취지의 공개 질의를 보내 각각 공식 답변을 받았으며, 본 기사는 양 기관의 답변과 취재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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